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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최규석, <울기엔 좀 애매한>







자랑할 일은 아니라 일기에는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나는 작년에 생계와 그 외의 목적을 위해 한 분기 정도를 들여 논술학원에 전임처럼 출강한 적이 있었다. 기형화된 사교육 시장 덕분에 보수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아, 일자리가 있을까 싶던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여러 학원 가운데 선택을 해야 했다. 면접의 낭인 길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학원은 인천의 본가 근처에 있는 것으로, 지하철로 세 정거장 쯤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그 면접을 마치고 나면 나는 그간의 면접 사항을 쭉 늘어놓고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되는 일이었다.

서울에 세 정거장 가까운 본가에서도 통학하기가 싫여 출가한지 십 년이 되어 간다. 일단 예의라 면접은 보러 가면서도 어쩔까 고민 중이었는데, 초행길이 두시간 반이 걸렸다. 왕복이면 다섯 시간. 급여를 한 배 반쯤 더 주지 않는 이상 무조건 거절해야지. 마음을 먹고 걷는데 어디선가 봤던 길이었다. 학원을 찾아 헤매면서 생각을 해 보니, 십여년 전 고등학교 때 잠시 만났던 여자친구, 한 달 용돈 4만원에 주제넘게 택시를 타고 그 친구를 두어 번 집까지 데려다 줬던 일이 있는데, 그 길이었다. 무슨 아파트였는지까지는 기억이 안 났지만 아무튼 길을 걷다 보니 어디서 뭘 했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등이 떠올라 나는 지갑속에 묵혀뒀던 복권이 1등에 당첨된 듯한 기분이 되었고, 통근 시간과 차비를 고려하면 다른 학원들에 비해 그닥 나을 것도 없는 그 학원과 계약을 했다.

꽤 오래 전에, 고작 몇 달이지만 강남 애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농담이나 개인적인 관계 쌓기에 철저하게 경계심을 보이고 문제 해설에 사사건건 토를 달던 그 아이들은, 어느날 그 애들이 가져온 고난이도의 문제를 내가 앉은 자리에서 풀고 해설까지 해 주자 곧장 신도처럼 변했다. 애당초 서로의 관계라는 것이 돈 받고 기술 가르치러 간 거지만 목적 의식에 경도되어 있는 그 모습이 혐오스러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향의 애들은 꼭 도둑고양이처럼, 퉁명스럽게 인사하고 이따금 멋적은 듯 웃으면서 아주 서서히 다가왔다. 나는 그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앞으로 그 애들 인생에 꽤 긴 시간동안 상당한 영향을 미칠 대입 정보를 물어다 줄 사람이 전문가도 아닌 나 같은 사람 뿐인 그 처지에 내 옛 모습이 겹쳐져 안타깝기도 하고 그랬다. 나는 강의실만큼이나 긴 시간을 그들과 옥상에서 보냈다. 대학 입시논술 기간의 특강이어서 짧으면 4강, 길어봐야 8강만에 헤어질 사이의 학원 선생한테, 앞으로 몇 년동안 기억될 지난 겨울의 추운 바람에 발끝이 얼어가면서도 그들은 평생 그런 말들을 한 번도 입 밖으로 내 본 적이 없던 것처럼 자기 얘기들을 쏟아내었다.

정식으로 취업한 뒤의 첫 제자들은 대부분 논술 입시에서 낙방을 하거나 지원한 대학보다 낮은 곳에 입학을 했다. 정보도 없고 이름난 학원도 없고 명문 고등학교도 없는 곳에서 태어난 팔자를, 막판에 수십 만원 들인다고 바뀔까 싶었던 건 부모들만의 꿈이었을 뿐 그 애들도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둘씩 결과를 알리는 메일을 받으면서, 나는 옥상에서 애들의 얘기를 들었으면 충분했지 괜한 충고들을 했던 건 아닐까 하고 자책했다.

전성기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둘리는 일용노동직, 도우너는 사기꾼, 희동이는 조직폭력배가 되어버린 단편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광주항쟁이 보통 사람의 일생에 남긴 것에 대한 <100'c> 등 사회에 관해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온 만화가 최규석의 신작 <울기엔 좀 애매한> 이다. 이번 작품은 작가가 미술학원에서 대학 입시를 위한 만화를 가르쳤던 경험에 근거해 그려졌다고 한다. 작가는 관조적이며 염세적인 페르소나를 작중에 관찰자 역할로 등장시키고 있으며, 주인공은 작가가 일하는 학원의 미대 지망생들이다. 아이들마다 각자 개인적인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감성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기본적으로 작중의 아이들이 지닌 근원적 문제는 개개인의 환경이 아니라 빈부 격차를 고착화시키는 사회의 구조에서 발원한 것이다. 제목인 '울기엔 좀 애매한'은 작중 인물의 대사 가운데 일부인데, 모여서 서로 힘든 사정을 자랑하며 낄낄거리는 학생들에게 한 여학생이 '찌질하다'며 비난을 하자 한 인물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게 말이지, 나도 그래서 한번 울어 볼라고 했는데... 이게 참 뭐랄까... 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

 

재수생인 이 학생은 딱지가 붙은 집이 있고, 건강이 좋지 않은 엄마가 있고, 꿈을 포기한 동생이 있다. 재수생활은 맥주집 알바로 꾸려가고 있는데, 그 적은 돈마저도 집의 사정 때문에 받기도 전에 인출되어 버렸다. 그 아이가 하는 말이다. 이런 일들은, 이제 전쟁이나 고아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에 비교해서만 울지 않을 수 있는 일이 되고 말았다. 누가 고작 스무 살 먹은 아이에게 이런 일로는 울지 말라고 가르쳐줬단 말인가. 그 정도의 일을 겪는 사람이 주위에 수도 없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깨우친 것일 터이다.

최규석 씨는 권두에 다음과 같이 썼다.

"20대부터 30대 초반의 몇몇 시기에 미술학원에서 대학 입시를 위한 만화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보지 않으면 나았을 테지만 매일같이 학생들과 얼굴을 맞대는 상황을 겪고 나니 그들을 위해, 아니 적어도 어린 시절의 내가 퍼부었던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내가 가진 삽 한 자루로 할 수 있는 만큼을."

일기라도 썼어야지. 잘 한다, 하고 나는 자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