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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박수근, <일상풍경>





<일상풍경> (박수근 삽화, 유홍준 구성. (주)태평양. 2003)


사진의 위로부터 세 권은 <대머리 여가수> 관람을 위해 찾았던 대학로 SM아트홀 앞의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이

다. 이
책의 원가는 18,000원. 구입가는 8,000원. 월간 <장업계>에 실렸던 화가 박수근의 삽화를 모아놓은 책이

다.



출판사가 태평양인 것이 가장 먼저 눈이 갔다. 화가의 생전에 태평양 임원들이 패트런이라도 되어 줬던걸까 의

문을 갖
게 됐는데, 책의 말미에 실린 유홍준 씨의 관련 해설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장업계'란 화장품 공업계의

준말로 이 업
계의 관련자들이 모여 만든 협회가 '장협'이며 이들이 홍보를 위해 제작한 책자가 곧 월간지인 <장

업계>인데, 출판 당
시 장협의 회장이 (주) 태평양의 이사로서 자료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삽화라면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장
르도 아니고, 굳이 이제와 박수근을 재조명한다고 해서 태평양이 생산하는 화장품의 주

고객들이 새삼스레 구매를 서
두르거나 늘릴 것도 아니니 기업의 순수한 사회 환원 차원이라 보면 좋을까. 아무

튼 나는 사정을 알고 기분이 좋았다.



책은 태평양 이사의 인사말과 유홍준 씨의 해설, 그리고 총 87컷의 삽화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성이다. 가로세로

가 정
사각형으로 한 뼘 정도의 책이지만 애당초 삽화이기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화가의

장기인 아낙
의 그림이 간결한 선으로 농후한 정취를 얻고 있는 몇 장도 놓칠 수 없지만, 무엇보다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뻔하디 뻔
한 크리스마스 삽화였다. 한 컷은 체리방울 같은 열매, 한 컷은 교회와 침엽수를 배경으로 루

돌프로 추정되는 사슴 한
마리가 뛰놀고 있는 그림인데, 그 또한 생활을 위해 해마다 돌아오는 성탄절에 맞춰

그림을 그리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했던 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내게는 작가와 그의 그림에 더욱 애정을 느

끼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근대의 문화사나 현대 미술사를 공부하는 이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값진 자료이겠지만 문외한에게는 부담이 되

는 정
가인데, 다행히도 깨끗한 책을 중고가에 만나게 되어 기뻤다. 구입을 권하지는 못하겠고, 굳이 보고 싶은

이는 내게
빌려줄 것을 청하는게 좋겠다.


쓸 말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적어놓고 보니 분량이 한 번에 읽기에는 부담되는 것 같아 나누어

쓰는 것
이 낫겠다 싶다. 그럴 요량으로 앉은 자리에서 사진을 한 권씩 다시 찍었는데, 컴퓨터로 옮겨 사이즈 조

정을 마치고 나
서야 <허사대사전>을 빼뜨린 것을 알았다. 다시 찍고 옮기기 귀찮은 것도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이 감상만 써도 될 책
이 아닌 것 같아 그 책의 독서일지만 후일로 미룬다. 어차피 한 번 읽고 잊을 때까지 꽂

아둘 것이 아니라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