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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0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출처 연합뉴스>


이 사건의 공식 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언론사 별로 임시로, 혹은 각자의 사상적 차이로 '남북 연평도 포격전', 

또는 '북
연평도 도발'등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기를 쓰고 있는 오늘인 2010년 11월 23일 화

요일 오후 2시 34
분, 북한이 서해의 연평도에 수십 여 발의 해안포를 발사하였다. 관계자에 따르면 최소 백발, 많게는

이백 발에 이르렀다고 한
다. 합동참모부는 우리 군이 13분이 지난 2시 47분, 80여 발의 대응사격을 했다고 발표했다.


병장과 이병, 두명의 군인 사상자
가 나왔으며, 민간인 포함 중경상자는 현재까지 이십여 명에 이른다. 연평도 주민들

은 여덟시 반 경 연안부두로 대피했지만 두 명이 행방불명 중
이라고 한다. 국방부는 서해 5도 지역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비상 경계 태세를 갖추었으며 해당 지역 초중고교 11개는 임시 휴학에 들어갔다. 


조선중앙통신은 13시부터 우리 군이 북한의 영해 상으로 발포를 시작해 그에 대응하는 사격을 한 것이라는 보도를 내

보냈다. 국방부에서는, 당시 서해상에서 우리 육해공군의 합동훈련인 호국훈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포격은 호국

훈련과 관계 없이 서남쪽의 해상을 향해 행해졌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는 양쪽 정부 측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

받는 수준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경과는 알 수가 없다.


남한의 영토 위로 사격이 행해진 것은 휴전 후 처음이라고 한다. 나도 밥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이 뉴스를 보고는

한참 동안이나 자리에 앉지 못했다. 연평해전, 서해교전도 모두 우리의 젊은이들이 치룬 국지전이지만, 해상에서 군인

들끼리 일어난 충돌이었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검은 연기를 곳곳에서 피워내고 있는

연평도의 사진을 보니 공포가 실체를 갖고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경과가 밝혀지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이 사건은 이미 결과 그 자체를 거대한 동력 삼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주목한 뉴스는 데프콘을 4에서 3으로 한 단계 격상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몇몇 언론들은

'이로써 주한 미군의 여러 장비를 사용해 전략적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등의 장미빛 예측만을 보도하지만, 그렇

게 되면 전작권, 즉 전시작전통제권이 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간다는 사실은 작게 언급하거나 혹은 배제하였다. 북한의

영변 핵 시설 공개, 그리고 국방부 장관의 전술핵 재배치 발언이 있었던 요 며칠 사이이다. 전작권이 넘어간 사이 이번
 
사태의 확전 방지 외에 어떤 군사적 변화가 추가적으로 이루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첨언하자면, 현 국방부 장관은 의

혹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는 천안함 사태로부터 몇달째 유임하고 있는 김태영 씨이다.)


사회적으로도 연계 현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문자를 돌린 중학생은 조사 뒤 훈방조치 되었지

만, 예비군 징집문자를 조직적으로 발송한 주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나는 다행히 받지 않았지만, 남한 남성을 하

나로 단결시키는 힘이 있다면 바로 군대 관련 이슈일 것이다. 단순한 장난이라면 먼 훗날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

겠지만 괴소문 유포 세력과 전쟁에의 공포를 자극함으로서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세력이 같다면 이후
 
반드시 조사되고 법적, 도의적으로 철저히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여파가 미친 곳이라면 역시 경제계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개성공단 문제 외에, 당장 주

가가 큰 폭으로 폭락하였고, 환율과 금값은 폭등하였다고 한다.


아직 종료되었다고는 아무도 말 할 수 없지만, 나 개인에게 있어서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또한 역사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몇 안 되는 사건 중에 하나였다. 성수대교 붕괴나 IMF, 김일성 주석 사망 등은 현대사를 공부하며 빼 놓을

수 없는 항목이겠지만 아직 정치적 자아가 깨어나지 않았던 내게는 하나의 뉴스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번 사건은 지금 받고 있는 일차적 충격 이후로도 큰, 그리고 대단히 직접적인 영향을 내 삶에 미칠 것이라는 예감이 든

다. 가장 먼저 바라는 것은 확전의 방지이고, 장기적으로는 이 사태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발호

하지 않기를 바란다. 구체적인 반론 증거들이 정리되기 시작한 천안함 의혹, 영부인 사기 의혹 건, 청와대의 대포폰 사

용과 무차별 사찰, 삼성의 MBC 도청 등 굵직한 현안들은 한동안 묻혀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묻히기를 바

라는 이들과 정치적 이득을 함께 하는 언론들이 한동안 소리 높여 빨갱이 나팔을 불어 대겠지만, 그 속에서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진실을 전하려는 학자와 기자들이 있길 기대한다. 예측과 심증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공정한 기록과 일신의

안위를 위해 더 많은 정보가 나온 뒤로 미루어 둔다.


큰 관련 없는 내용 같지만, 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여당 대표가 모두 군 면제자라는 사실이 부각될 때마다,

비난받을 일이긴 하지만 그 세 자리가 갖는 상징성에 지나친 무게를 둔, 다소간 지나친 악의가 포함된 표현이라고 생

각해 왔는데, 이번엔 좀 눈쌀을 찌푸리며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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